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16:13-20
요즘 오딧세이라는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중 하나인 오딧세이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험한 여정과 고향에서 아내와 아들을 만나고 자신의 왕위를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떠나 고향 이타카까지 가는 과정은 매우 험하고 깁니다. 목숨을 잃을 위기도 겪고, 시간도 2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생하고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타카 사람들은 오딧세이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오디세우스의 권력과 궁전은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아내까지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 앞에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정체를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오디세우스는 한동안 자신의 정체를 감춥니다. 그런데 계속 정체를 감추지는 않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활을 쏘아 화살이 열두 개의 도끼날 구멍을 통과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오디세우스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오딧세이 이야기의 절정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을 계기로 결국 왕위를 되찾고 아내와 재회하고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만약 오디세우스가 적들이 두려워서 자신의 정체를 계속 숨기고, 그냥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아주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고, 그런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자신의 정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제법 있습니다. 예전에는 남장을 하고 사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드러내면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남자인체 하며 산 것입니다. 지역 차별이 심하던 시절에는 자기 고향을 밝히지 않거나 숨기거나 속이며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가짜 대학생들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때는 강의실에 아무나 자유롭게 출석할 수 있고, 수강생이 수백 명이나 되는 과목도 많이 개설되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수업도 듣고 학생인체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런 사람도 있었고, 학생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경찰이 신분을 위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다 불행한 일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떳떳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 자체가 슬프고 불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면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의미 있거나 재미있는 인생을 살 수는 없습니다. 자신을 속이고 감추면서 어떻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심지어 자신의 학력이나 경력을 위조하는 문서를 만들고 그것을 가지고 완전히 딴 사람으로 살다가 발각되어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의 정체를 숨긴 것이 나중에 발각되어 관계가 깨지는 일도 많습니다.
가난하든 부하든, 지위가 높든 낮든 관계없이 자기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자기답게 살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참으로 멋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참으로 의미 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신약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라고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우리의 정체, 특히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묵상해보았습니다.
오늘 봉독한 신약의 말씀 마태복음 16장 13-20절에는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나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내는 고백이요, 그 예수님을 따르는 베드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이 위대한 신앙고백이 예수님 생애의 분수령이 됩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이 위대한 신앙고백 후에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갈릴리 지방의 활동을 마무리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하십니다. 예수님은 3년간의 갈릴리 활동을 마무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십니다.
이처럼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 사건 후에 예수님의 활동 지역과 활동 내용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런 면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의 정체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의 배경이 나옵니다. 13절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 일행이 빌립보 가이사랴에 가셨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가이사랴 빌립보라고도 부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갈릴리 호수 북쪽, 헐몬산 기슭에 있는 매우 비옥하고 경치가 수려한 도시입니다. 과거에 이 지역은 바니아스라고 불렸습니다. 그곳에는 거대한 절벽과 동굴들이 있었고, 그 절벽 앞에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빌립이 바니아스를 포함한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지방을 다스렸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아부하고 뇌물을 바친 대가로 그런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가 그 지역의 분봉왕이 되었을 때, 바니아스의 이름을, 로마 황제의 칭호인 가이사와 자신의 이름 빌립을 조합하여 빌립보 가이사랴, 또는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바꾸었습니다. 자신을 높이고 로마 황제에게 아부하기 위해 도시의 이름을 바꾼 것입니다. 그는 이 도시를 수도로 삼고, 황제를 위한 신전도 세웠습니다. 그 신전에서는 로마 황제를 신의 아들이나 신으로 떠받들었습니다. 이처럼 빌립보 가이사랴는 세속 권력자인 헤롯 빌립과 로마 황제를 높이는 도시입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는 왕이나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함부로 높일 수 없습니다. 정치 권력자와 우상이 높임을 받는 도시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존재를 높이며 반역자, 사회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으로 규정되어 불이익을 당하거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시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14절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또는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라고 부른다고 전했습니다. 이 대답은 당시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객관적인 평가에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직설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15절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당신을 3년 동안이나 따르며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듣고 지켜본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신앙생활에 관심 있는 사람이 성경 해설서나 신학 서적을 읽으며 예수님이나 교회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기초로 예수님이나 교회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초로 신앙생활을 할지 말지를 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보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의견에 휘둘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판단으로, 즉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객관적인 것은 진리에 가깝고, 주관적인 것은 거짓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주관적인 것은 한 개인의 생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좋은 판단을 하려면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좋은 책을 많이 보고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어떠하냐고 묻지 않으시고, 우리 각 사람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물으십니다. 우리 각 사람의 주관적인 생각,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얽매이지 않는 온전히 자신만의 생각을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런 주관적인 질문을 하시고, 주관적인 대답을 원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생활이 근본적으로 예수님과 우리 각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예수님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 각 사람과 예수님의 일대일 관계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사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가장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대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그러한 대답을 합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나서서 대답합니다. 16절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자기 앞에 계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이 단어를 히브리어로 하면 메시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세상을 다스리실 권세를 가지고, 세상에 오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 그리스도, 메시아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빌립보 가이사랴는 세속의 권력자들을 높이고,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바로 그 도시에서 로마 황제나 헤롯 빌립 같은 세속 권력자나 여러 우상보다 예수님을 더 높이고 예수님이 모든 존재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헤롯 빌립이나 로마 황제보다 더 높은 분이요, 그런 사람들을 다스리는 분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로마 황제보다 높은, 예수님이 온 세상의 왕이라고 선언함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자신은 세속의 통치자보다 예수님을 더 높이는 사람이라는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베드로와 더 나아가 예수님까지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이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한 사람으로 여겨져 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매우 위험한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칭찬하시며, 그 신앙고백을 기초로 하실 일을 말씀하십니다.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이 베드로의 본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잘 했다는 뜻이요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옳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것은 혈육, 즉 피와 살을 가진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 덕분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덕분에 베드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고백했다는 뜻입니다.
앞서 한 개인의 신앙고백은 객관적인 정보의 수집의 결과가 아니라, 주관적인 자신만의 생각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주관적인 판단에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과 함께 하시고,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사는 것은 단지 우리 각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일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 일을 하십니다.
18-19절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위대한 신앙고백을 기초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18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시몬을 베드로, 즉 반석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반석은 베드로라는 개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앙고백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세속 통치자보다 더 높이고, 예수님만을 왕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기초로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워진 교회를 음부의 권세, 즉 사망의 세력이 이기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빌립보 가이사랴에는 거대한 절벽과 동굴이 있었고 그곳에 우상을 숭배하는 시설과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 동굴 중 땅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거대한 한 동굴이 있는데요. 그 동둘의 입구를 음부의 문, 즉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음부의 권세는 바로 로마 황제 같은 세속권력자나 우상을 숭배하는 세력을 가리킵니다. 그 세력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세력인데, 예수님은 그러한 세력이 결코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공동체, 즉 교회를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이 세상 그 어느 세력도 이길 수 없는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망의 세력까지 제압하고 생명이 승리하는 시대가 오게 합니다.
오늘 본문 19절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리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즉 교회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고, 교회가 죄 용서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고, 교회가 용서하면 하나님도 용서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구절은 죄를 용서하는 권능을 교회에게 맡기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죄 용서의 복음을 선포하여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고 천국으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교회가 바로 이 세상에서 죄를 없애고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인 것을 제자들에게만 알리시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까지 그러한 고백을 숨기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들은 공개적인 장소에 나가서, 심지어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선포하는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죄를 없애고 온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복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요, 우리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일은 단지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 앞에서 ‘너는 누구라고 하느냐?’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을 듣고 그 질문에 신실하게 응답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단지 우리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그 어느 통치자도 높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그러한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통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복음을 전파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거룩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서 우리가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함으로 예수님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권력자나 주변 사람이 두려워서, 또는 이해관계에 얽매여서, 또는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를 감추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고백하고 드러내며 살아갈 때, 죄인을 용서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를 드러내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온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하시고, 거룩한 교회의 지체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심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이라는 정체를 담대하게 드러내게 하옵소서. 그러한 삶으로 온전한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삶을 통해 사람들의 죄를 없애고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복음을 선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